AI 도입·전략 · 2026-11-03 · KNOWVERSE

애플 신임 CEO가 꺼낸 한마디 — "우리는 AI를 위한 AI는 안 만듭니다"

지난주 로스앤젤레스, 터치스크린 맥북프로를 막 공개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애플 신임 CEO 존 터너스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AI를 위한 AI는 내놓지 않습니다."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용자는 그 결과를 AI가 만들었는지 기존 소프트웨어가 만들었는지 신경 쓸 필요조차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AI 에이전트가 지금의 앱을 대신할 거라는 전망에도 선을 그었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일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일입니다."

터너스는 지난 9월 1일 팀 쿡의 뒤를 이어 취임했습니다. 그가 물려받은 자리는 편치 않습니다. 애플은 몇 년째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강화된 시리는 올여름에야 겨우 세상에 나왔으니까요. 보통 이런 위치에 선 경영자라면 뒤처짐을 만회하겠다며 더 많은 AI 기능을 쏟아내겠다고 약속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안 하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파울 클레 화풍의 저울 위 사과 한 알과 흩어진 톱니바퀴들

사용자가 몰라도 되는 게 기준이다

저는 이 발언에서 '안 한다'는 선언 자체보다 그 기준에 눈이 갑니다. AI를 썼는지 안 썼는지 사용자가 의식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말은, AI를 기능 목록에 올리기 위해 쓰지 않겠다는 뜻이거든요. 요즘 많은 기업이 AI를 '얼마나 넣었는지'로 서로를 재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SK텔레콤은 최근 'AX 혁신 2.0'을 발표하면서 직원 4천 명 이상이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봤고, 1,500개가 상시로 돌아가고 있으며, 구성원 93.8%가 이 변화에 공감한다는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CEO 직속 TF가 데이터 권한을 정비하고, 조직마다 3개월씩 업무 전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짜는 실험까지 하고 있죠. 속도와 참여율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추진력입니다.

저는 이 속도 자체를 탓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넣었는가'가 성과의 척도가 되는 순간, 조직은 조용히 숫자를 불리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에이전트 숫자, 참여 인원, 공감률 — 다 의미 있는 지표지만, 거기에 '왜 이 업무에는 안 넣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은 흔치 않지 않나요? 터너스의 발언이 날카로운 건 바로 그 질문을 뒤집어서 던졌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성과를 낸 쪽은 범위를 좁혔다

실제로 소리 없이 숫자를 낸 사례를 보면 이 기준이 보입니다. HD현대로보틱스는 팔란티어의 AI를 산업용 로봇 현장 문제 해결이라는 딱 한 가지 업무에 붙였습니다. 평균 21.5일 걸리던 처리 기간이 7.9일로, 63% 줄었습니다. 전사 전환이나 조직 재설계 같은 거창한 선언 없이, 가장 반복적이고 데이터가 쌓여 있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이 두 사례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터너스가 "사용자가 몰라도 되게"라고 말한 것과, HD현대로보틱스가 "이 업무 하나만"이라고 범위를 좁힌 것은, 둘 다 AI를 넣을 자리를 숫자가 아니라 쓸모로 정했다는 점에서 닿아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기업의 기술 전략을 들여다보면서 저는 비슷한 장면을 자주 봤습니다. 새 기술이 나오면 조직은 꼭 두 갈래로 갈리거든요. "얼마나 빨리, 많이 넣었나"를 보여주려는 쪽과, "이 일에는 왜 아직 넣지 않았나"를 설명할 수 있는 쪽. 전자는 발표 자료에선 화려하지만 1년 뒤 돌아보면 쓰이지 않는 기능만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이걸 '증명 피로'라고 부릅니다 — AI를 도입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쏟은 힘이, 정작 그 AI로 뭘 해결했는지 설명하는 힘보다 커지는 상태 말입니다.

지금 조직도 한 번쯤 자문해 볼 만합니다. 올해 AI를 '넣은' 곳을 나열할 수 있다면, '넣지 않기로 한' 곳과 그 이유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기업의 AI 도입 구조를 들여다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저희 TechScan 진단으로 그 기준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점검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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